혹시 제 나이또래에 만화 좀 봤다 하시는 분 있습니까?

제가 아직까지도 애정하는 만화인 아르미안에 네 딸들이라는 만화 중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야 생은 그 의미를 가진다]라는 명대사가 있었다.

지금 보면 뭔가 좀 오글거리지만 (^^;) 타당성도 있어보이는 멘트가 어린 나이에 강렬하게 와닿았드랬다.

일어나라 여전사여!

네덜란드에 오기 전 미얀마에서 지낸 3년 반.

(주변나라들에 비해서) 친절하고 순박한 미얀마 사람들과 그만큼 때묻지 않은 자연, 친한 지인들까지... 미얀마의 생활은 참 행복했다. 떠나지 않고 오래오래 있고 싶었지만 떠날 시간은 다가왔고 남편이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했던 네덜란드에서의 취업 자리가 들어와 2019년 12월 14일 울면서 미얀마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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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반 코로나라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견됐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의 확진세는 너무나 빨랐고 유럽으로 넘어오더니 동남아까지 파죽지세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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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의 삶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열악한 의료 시설이다.

2021년, 미얀마 정부는 나라의 문을 걸어잠궜지만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은 슬슬 불안해졌고 사재기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친하게 지내던 한국, 미얀마 지인들 중 누구도 미얀마를 뜬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철저히 방역을 지키고 조심히 지내면 바이러스의 기세가 수그러들겠거니 믿었다.

 

하지만 더 큰 일이 벌어졌다.

2021년 2월부터 군부의 통제가 심상찮더니 결국 아웅산 수치 여사를 내란죄로 구속했다.

나라의 평화는 깨졌고 미얀마의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평화 시위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때 한국을 시위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룬 롤모델로 바라보며 군부의 독재를 깨뜨릴 수 있을것이라 믿는 젊은이들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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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목숨이 스러졌다.

태권도 사범 소녀가 열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총에 맞아 숨졌다.

2살 4살 아이가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군부의 총격으로 사망한 19살 Phyu Thwel

쿠데타가 장기화 되자 결국 알고 지내던 외국인, 한국 지인들이 하나 둘씩 미얀마를 떠나기 시작했다.

미얀마 군인들이 외국인이라고 쿠데타 상황에서 예외를 줄리 만무하기 때문.

미얀마에서 파워가 세던 자이카 직원들까지 총으로 위협을 당했다는 뉴스도 올라왔고 미얀마 독립 언론의 미국인 편집장이 인센 형무소로 끌려가 11년의 형을 받기도 했다.(미국의 외교력은 참 대단하다. 11년의 형을 받은 편집장은 몇개월의 감옥 수감 후 건강을 이유로 풀려나 결국 미국땅을 밟았다)

병균은 조심할 수 있지만 군인의 총알은 조심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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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미얀마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내가 다니던 체육관 Team PT의 관장은 뽀 또[Phoe Thaw] 라는 유명 격투기 선수로 싱가포르 One championship 경기에서 활동하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다.

경기가 없을 땐 제자들을 가르치거나 헌혈을 하고 기부를 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똑똑한 사람이자 택시기사 - 일본 대사관 경비를 거쳐 프로 격투기 선수로 데뷔할만큼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뚝심도 있는 사람이었다.

뽀또의 밑에서 트레이너이자 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던 사이[Sai]는 내게 운동을 가르쳐주던 트레이너였다.

 

둘 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특정 명절이 되면 탁발을 하고 절에 가 참선을 하는, 절대 격투기 선수로 보이지 않는 선한 인상의 평범한 미얀마의 청년들.

 
Phoe Thaw./ 사진 출처: ONE Championship

네덜란드에서 락다운에 지쳐가던 5월, 같이 운동하던 다른 외국인 지인에게 문자를 받았다.

뽀또가 자기 체육관 내에서 폭탄이 터져 온 몸에 극심한 화상을 입었고 함께 있던 사이는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얘기였다.

공공연히 반군부/민주화를 외치던 이들이기에 군부에 대항하기 위해 사제 폭탄을 만들다 터졌다는 루머, 군부가 체육관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루머 사이의 팩트는 더 처참했다.

화상을 입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그를 군부가 체포해 인센 교도소로 (한국의 70년대 감옥이 그랬듯 인센 교도소 역시 미얀마 내에서 악명높은 곳이다. 정치 수용범들을 가둬놓는 곳이고 공공연히 고문도 이루어진다) 끌고갔다고 했다.

 

뽀또의 소식도, 트레이너 사이의 소식도 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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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사이의 사진이 페북에 떴다.

 

장총을 들고 반군부 군복을 입은 사진이 떴다.

 

그랬다. 그는 뽀또가 폭탄에 스러지자 그 길로 바로 반정부군으로 합류한 것이다.

 

몇달전만 해도 실없는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던 우리였는데

남편없이 비행기를 타는 나와 딸을 위해 공항까지 나와 짐을 옮겨주고 마지막 인사를 해주던 사이였는데

 

뽀또의 제자들, 동료들 중 누군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누구는 반정부군으로 총을 잡았고 누구는... 모르겠다 어떻게 지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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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아주 작은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했다 믿었다.

네덜란드에 정착만 끝나면 겨울 휴가를 미얀마 바닷가에서 보내리라 양곤에 가 짜잔하고 체육관에 가 평소처럼 실없는 장난을 치고 인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갈림길이 실은 샛길이 아니라 인생을 송두리 바꿔버릴 그런 길이었나보다.

 

미래는 예측불허인게 맞고, 그래서 그 생이 의미를 가지는 것도 맞겠지만 이들의 인생이 조금만 평탄했을 수는 없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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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내 마음의 빚이자 죄책감이다.

블로그에 써야지 올려야지 하면서 하루하루를 미루고 있었던 글이기도 하다.

이상하게 안 써지고 못 써지던 글이다.

 

잊지않았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건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