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살이를 하는 모두들에게 정기적으로 다가오는 그분, 향수병.

갑자기 몸이 아픈데 간호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장 혹은 학교에서 내 잘못이 아닌데 언어 문제로 내가 오해를 살 때나 

숨 쉬듯 자연스레 나오는 모국어가 아닌 속으로 연습해서 얘기하고, 실수할 때마다 당황하고 비웃음을 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외국어 쓰는게 싫어 입을 굳게 다물게 되는 날이나

가족과 한 자리에 모여 앉아 같이 밥을 먹고 싶은 날

크게 잘못된 게 없는 날인데도 누가 툭 치면 눈물이 흐를 것 같은 날

평소엔 그닥 좋아하지도 않던 가수의 노래를 듣는데 울컥하는 날

집 앞 동네 놀이터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는 날

왜 내가 내 조국을 놔두고 여기 와서 힘든 타향살이를 하고 있나 많은 생각이 드는 그런 날들이 있다.

해외살이가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13년 차인 지금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향수병. 

시간이 지나고 해외살이가 길어지면 향수병도 잦아들고 그러려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해외살이가 익숙해진다고 해서 내 고향이 덜 그리워지는 것이 아니라 

당황스러울 만큼 눈물이 핑 하고 도는 이 감정이 향수병일 수 있겠구나 하고 좀 더 빨리 알아차리게 되는 것뿐

 

미얀마-벨라루스-네덜란드 국제 이사를 마치자마자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이후 네덜란드-한국으로 가는 비행편도 끊겼다. 억지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다 해도 몸이 좋지 않은 친정 엄마에게 혹여나 바이러스라도 옮길까 걱정되어 한국에 방문하지 못하는 기간이 벌써 1년 하고도 5개월. 

미얀마에 살 때는 거리적 이점이 있어서 한국을 1년에 한 번 가기도 했고 한국에서 가족이 방문하기도 했고, 주변에 한국 지인들이 많아 향수병을 느낄 새가 참 적었는데 헤이그에 오니 시시때때로 향수병이 찾아온다. 

 

향수병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은

고춧가루 팍팍 들어간 요리를 한다.
라면에 고춧가루 팍팍 넣고 먹어도 되고 김치가 있으면 호사스럽게 김치찌개를 끓여도 좋다.
청양 고추를 넣은 짬뽕 라면도 좋다. 

매운 요리를 차린 다음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한국 드라마, 예능을 켠다. 

너무 웃겨서 웃다가 눈물이 날 것 같은 예능을 틀어도 좋고
눈물 줄줄 나는 영화나 뮤직비디오, 드라마를 틀어도 좋다. 

난 그제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 생활 마지막 회를 짬뽕 라면을 먹으면서 봤다. 환자들 스토리에 눈물 줄줄, 매운 짬뽕 덕분에 콧물 줄줄 흘리면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서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콧물 눈물 땀 빼면서 젓가락으로 라면 불어먹는 씬 자체가 모양은 좀 빠지고 찌질해 보일 수도 있다. 뭐, 사실 데이트할 때 보여줄 만큼 예쁜 모습은 아니다 ^^; 

하지만 좀 찌질하고 모양이 좀 빠지면 어떤가. 

원래 인생은 멋지고 스웩넘치는 장면과 그저 그렇거나 찌질한 나날들이 들쑥날쑥 이어져서 그려지는 그림이고

향수병에 걸린 내가 괜찮은 척 안 외로운 척 인스타에 멋진 사진 포스팅하면서 쿨한 '척'이 사실 더 찌질하다. 

실컷 울고 실컷 땀내고 슬프고 외로운 나를 인정해주고 토닥여주는 것, 그게 해외 생활 장기전의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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