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 30분의 긴 비행과 뽀사지는 허리를 덤으로 안고 한국에 도착했다. 

(담번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 비즈니스를 타고 오고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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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친정이 있는) 도시는 청주다. 

딸의 여권 재발급을 하기 위해 구청을 방문했는데 주변 상가 및 길에서 외국인들이 참 흔히들 보였다. 러시아어로 '점원 구함'을 써 놓은 핸드폰 대리점, 세계 각국의 식재료를 파는 세계 슈퍼, 은행 창구에서 상담을 받던 외국인 등등..

동생 말로는 그 지역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라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 되었고, 최근 그 지역 일부에 비싼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아이들과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점에서 그 아파트 분양을 꺼려하는 지역이란다.
영어를 쓰는 다문화 아이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러시아어, 중국어, 베트남어를 쓰는 아이들과는 같은 학교 배정을 저어한다고 했다. 
학교 뿐 아니라 지역 자체가 낙후되고 저임금 노동자가 많기에 치안에도 어느정도 불안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물론, 동생은 언니가 국제 결혼을 했고 조카가 다문화아이인만큼 이에 대한 편견은 거의 없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것을 전해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문화 가정의 당사자인 나는 그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오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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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종 차별은 인종 자체보다는 자본+인종 차별의 결합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중동 사람들이 종교때문에 무섭고 모스크를 짓는 것은 극렬히 반대하지만 두바이나 아부다비의 석유 부호들은 선망하는 한국. 
같은 백인이지만 미국과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G10 가입국의 선진국 백인은 선호하지만 러시아어, 슬라빅어를 쓰는 구소련, 동유럽권은 차별하는 한국. 
아이비리그 입시를 위해 에세이가 필요하지만 인도계 영국인 의대학생은 거절하고 백인 대학생을 선호하는 한국. 

만약 저 낙후된 사람들 중 성공해서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군의 좋은 아파트로 이사가는 다문화 가정이라면 학교에서도 분명 그 아이를 환영하고 잘 받아주리라 생각한다.
이 가정은 다문화가정이 아니라 돈있는 중산층 국제 가정으로 인식될테니까.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이주하게 된다면 우리 역시 재산 유무로 다문화 가정/ 국제가정으로 인식이 달라지게 될 거라는게 뼈져리게 느껴진다.

(다문화가정은 국제가족을 품기위해 만들어진 긍정적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다문화가정=금전적으로 넉넉치 못하거나 특정 국적의 국제결혼가정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고 국제 가정은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좌: 한국의 부자를 대변하는 브랜드 아파트들 ㅣ 우: 네덜란드의 부자들은 오래된 고택을 선호한다(Photo by Drew Bae on Unsplash)

하지만 과연 한국만 그럴까. 

안타깝게도 사회주의가 발달한 네덜란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좋은 동네 안에도 임대아파트를 정부가 나서서 건설하는 등 계층간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네덜란드 역시 임대 아파트 주변은 마클라(부동산)들이 그닥 추천하지 않는 매물들이다.

우리가 집을 사러 돌아다닐 때 단골 레파토리로 나오는 문구 중 하나가 '이 곳은 임대 아파트가 근처에 있어서 집값 상승을 그닥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라는 말이었다.

혹은 '이 골목은 특정 민족이 많이 사는 곳이라 추천하기는 힘들다' 라며 조심스레 다른 곳을 권유하던 우리 부동산 담당자. (우리 부동산 담당자는 굉장히 예의바르고 말씀도 참 예쁘게 하던 분이라 굉장히 정중하게 말씀해 주시긴 하셨지만)  

즉, 네덜란드 역시 특정 저임금노동자가 많이 사는 지역은 위험하다, 특정 민족이 많은 곳은 살기 나쁜 동네다 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그런 동네의 경우 놀랍게도 한국과 같은 학군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즉, 같은 동네임에도 불구 아이들의 초등학교가 인종별, 소득별로 달라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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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민자의 삶을 한번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민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처한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
이민자 중 윤택하게 살수 있는 소수의 투자이민자나 highly skilled migrated 이라고 불리는 고급기술이민자(우리가 생각하는 최첨단 기술, 의사, 엔지니어, 주재원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혹은 아이들에게는 좀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본국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새로운 나라에 뿌리를 내린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from the scratch', 즉 밑바닥부터 인생 제 2막을 시작한다. 


이민자들은 현지인처럼 방 한칸 전세값을 마련할 토대도 없고 취업에 유리할 인맥도 없으며 좋은 직업을 가지는데 필수적인 현지어도 부족하다. 이들이 현지인 중산층처럼 살 수 있을 확률은 백에 하나 아니 천에 하나에 불과하다.
이민자의 삶은 불리함의 인생이다. 처음부터 밑지고 들어가는 인생이다. 
물론, 자신들이 선택한 삶이니 고단해도 살아나가야 하는 삶이다.
다만 현지인이 처음부터 발아가 잘 되어 있고 거름과 양분, 양지라는 세팅이 갖춰진 곳에서 시작하는 묘목과 같다면 이민자는 척박한 자갈밭에서 혼자 씨를 틔우고 물이 없고 양분이 없어도 살아남아야하는 씨앗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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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네덜란드.
참 달라보이지만 한번씩은 너무나 비슷해서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런 일들.